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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첫날 밤(1)

 

 

2009년 2월 3일자 사진. 배냇털 밀기 전 모습.

 

 

 

 

지인의 친구분에게 미르를 데려가겠다고 말씀드린 뒤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가져간 담요로 미르를 감싸서 그곳을 나왔다. 

주차해놓은 지인분의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미르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겨있더니

차에 올라타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낑낑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법도 하건만 미르는 담요에 싸인 채 내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잠을 잤다.

앞으로 엄마가 되어 함께 살 내가 누군지,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불안하거나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뭘 믿고 이렇게 태평한 걸까....

이 맹랑한 꼬맹이의 편안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미르의 편안함이 내게로 옮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미르를 안은 팔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차의 흔들림 때문에 혹여 미르가 단잠을 깨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다행히 미르는 아파트단지 앞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나는 지인분께 태워다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현관문 앞에 섰다. 

한 팔로는 미르를 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문을 따기 위해 열쇠를 찾았다. 

그제야 잠이 깬 미르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그리고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응, 다 왔어, 미르야. 집이야."

 

나는 미르를 안심시키며 문을 열었고, 미르를 안은 채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처음 병원에 방문해서 잰 미르의 체중은 300g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새털처럼 가벼운 무게라서인지 미르를 안고 있는 내내 팔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미르는 생후 50일이 채 안 된 새끼 강아지였다. 

미르보다 한달 먼저 태어난 힘찬이도 여동생이 입양할 당시 미르와 비슷한 개월 수였다.

50일이 채 안 되었거나 갓 넘긴 시기였던 것이다. 

 

태어난지 채 두 달도 안 된 새끼 강아지는 시력도, 청력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미르의 경우는 눈은 떴지만 귀가 아직 안 열려있었다.

몇 번이나 불러도 소리에 반응이 없었다.

설마 못 듣나?

혹시 해서 미르의  뒤쪽으로 가서 귀 가까이 대고 박수를 크게 쳐봤지만 놀라는 기색은커녕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정말 못 듣는구나....

 

'어휴, 어떻게 귀도 안 뜨인 강아지를 분양하냐....'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어떤 공부도 없이 강아지를 분양받은 내 잘못이 더 컸다. 

이런 상태로 내게 온 미르가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미르와 살게 되고 나서 얼마의 기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점들이 또 있었다.

번식업을 하는 분들이나 판매장을 운영하는 분들이 어미젖을 떼기도 전에

새끼를 주로 분양한다는 것이었다.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 성장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몸피가 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강아지를 사러오는 분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기가 없다는 건 선택을 당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고, 

선택에서 제외된다는 건 돈이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어미젖을 떼고 나서도 작은 체구를 유지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료를 적게 먹이거나

아예 물만 먹이는 업주들도 있다고 했다. 

그 뒤로 애견판매하는 매장을 보게 되면 진열장 안에 있는 아이들을

편한 마음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모두 굶주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업주들도 있을 것이고,

양심 있는 업주 분들도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어쨌든, 미르가 내 집에서 첫 발을 내딛던 그때 

미르는 아주 작은 새끼였고 귀가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눈은 떠진 상태라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펼쳐놓은 담요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그제야 잠이 완전히 깬 듯했고,

그제야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된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미르는 어미견을 찾는 듯 방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미견이 내 집에 있을 리가 없었다.

 

끼잉, 끼잉, 낑, 낑......

 

미르가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울기 시작했다. 

마치 엄마를 잃은 길냥이 새끼가 사라진 엄마를 목 놓아 부르는 것처럼

미르도 크고 애달픈 소리로 방안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그 소리를 듣고 어미견이 돌아와주기를 바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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