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 썸네일형 리스트형 10. 개와 고양이의 시간 세 권짜리 역사소설의 마지막 권을 탈고하는 동안 2009년의 여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전송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미르를 산책시키는 것이었다. 마감일자가 다가오면서부터 매일 하던 산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시작한 산책은 초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아파트 산책길을 미르와 함께 걸으며 나는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다.간만의 산책이라 미르도 엄청나게 신이 나 있었다. 그날의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진다.저녁이내가 자욱이 내려앉던 어스름한 사위,흰 털을 휘날리며 내 앞에서 뛰어가던 미르의 뒷모습,글 쓰느라 진이 다 빠져 빼짝 마른 몰골로 미르를 뒤따르던 나... 많이 지쳐있었고 그래서 힘은 들었지만 마음만은 가볍던 그날의 산책은 지금도 내게 아름다운 .. 09. 가장 큰 위로 미르가 떠나고 나서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슬픈 것이 있다면 이제는 미르를 안을 수 없다는 것,만질 수 없다는 것,더는 그 아이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내 이마를 다시는 미르의 엉덩이에 댈 수 없다는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립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미르의 엉덩이를 통해 받았던 위로다. 생전에 미르는 침대도 좋아했고 베개도 좋아했었다.내 베개 옆에 놓아둔 여분의 베개는 항상 미르 차지였다.미르는 그 베개에 마치 사람인양 옆얼굴을 대고 누워 잠에 빠지곤 했다. 주둥이로 이불을 들추고 그 안에 쏙 들어가 누운 뒤 베개를 베고 눕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침대에 누워면 얼른 자기 베개로 올라가 엉덩이를 내 쪽으로 향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느라 쉬이 잠을.. 08. 호칭이 지닌 위력 시국은 혼란스럽고 나는 몸에 탈이 났다.며칠을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있자니 무지개다리를 건널 즈음의 미르가 떠올랐다. 그즈음 미르는 간과 신장이 망가져가고 있었다. 심장병 판정을 받은 뒤로 미르는 5년 가까이 심장약을 먹었다. 미르의 담당 수의사 원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심장약을 먹기 시작하면 2, 3년을 넘기기 어려워요. 미르처럼 5년을 버틴 케이스는 처음 봅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약을 복용한 탓에 미르의 장기들은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미르는 선천적으로 간이 건강하지 못했다.이 얘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적을 기회가 있으리라. 우리가 헤어질 무렵의 미르는 숨 쉬기 힘들어했고장기가 안에서 썩고 있는지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고약.. 07. 소파 추락 사고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인간은 쉽사리 포기를 못하고 집착하여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는 한다.나 역시 일적으로든 인간관계에서든 쉽게 포기를 못해 힘든 일들을 겪고는 했다.동물은 인간에 비해 생각이 단순하고 영혼이 순수하다.그래서일까.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인간처럼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고쿨하게 인정할 것 인정하고 포기할 건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미르를 키우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악몽 같던 첫날밤은 어찌어찌 지나가고 이튿날이 밝았다.다행스럽고 고맙게도 미르는 이날부터 울지 않았다.동물이 인간보다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방안 풍경이 밝은 빛에 드러나자미르는 흑구슬처럼 까만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며 .. 06. 첫날 밤(3)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미르가 자지 않고 울고만 있다고,이런 땐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다급하게 물었다.안아주라고 했다.그러고 보니 집에 데려올 때만 안아줬을 뿐,미르가 저렇게 우는데도 안아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미르야, 괜찮아, 괜찮아...." 나는 우는 미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그 아이의 작은 몸을 토닥여줬다.내 심장박동과 체온이 느껴져서일까.미르의 낑낑거림이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진작 이럴 걸. 왜 안아줄 생각을 못했을까. 내 품에서 이내 잠이 든 미르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나도 잘 수 있겠다... 나는 미르를 방석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침대로 가 누웠다.그 순간, 낑! 낑낑낑! 혼자 둔 걸 귀신같이 알고 미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방석에서 기어 나와 침대 바로 앞까지.. 05. 첫날 밤(2) "미르야, 울지 말고 여기서 자자." 나는 이렇게 달리며 침대 끝의 바닥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미르 전용 방석으로미르를 데려가서 눕혔다. 밤이 제법 깊어 있었고, 나는 몹시 피곤했다. 미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책상에 붙어앉아 종일 글을 썼고,미르를 만나기까지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지쳐있었다. 얼른 미르를 재우고 나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미르는 내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계속 울어댔다.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작은 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나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곳은 복도식 아파트였다.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쫓아올 것 같아서 나는 안절부절이 되었다. "미르야, 제발 그만 울어. 이렇게 부탁할게, 응?" 사정하고 또 사정했지만 소용 없었다.. 04. 첫날 밤(1) 지인의 친구분에게 미르를 데려가겠다고 말씀드린 뒤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가져간 담요로 미르를 감싸서 그곳을 나왔다. 주차해놓은 지인분의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미르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겨있더니차에 올라타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낑낑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법도 하건만 미르는 담요에 싸인 채 내 무릎 위에서 새근새근 잠을 잤다.앞으로 엄마가 되어 함께 살 내가 누군지,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불안하거나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었다.뭘 믿고 이렇게 태평한 걸까....이 맹랑한 꼬맹이의 편안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기도 했고한편으로는 신기했다.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미르의 편안함이 내게로 옮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03. 첫 만남 2008년 12월 23일.운명의 그날이 밝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도시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색색의 전구를 밝힌 크리스마스트리가 곳곳에서 반짝였고 거리마다 캐럴이 울려 퍼졌다. 날씨는 꽤나 추웠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바람도 제법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던 하늘은 저녁이 되도록 눈을 뿌리지 않았다. 지인분의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나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집안을 오갔다.앞으로 미르가 쓰게 될 방석과 배변판, 식기 등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미리 구입해놓은 이 용품들은 육각장 안에 놓여있었다. 먼저 힘찬이를 데려온 동생이 배변을 가릴 때까지 육각장 안에서 지내게 해야 된다고 조언해 주었던 것이다.미르가 먹을 사료도 준비해놓았고, 패드도 여유 있게 장만..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