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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10. 개와 고양이의 시간

 

세 권짜리 역사소설의 마지막 권을 탈고하는 동안 2009년의 여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전송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미르를 산책시키는 것이었다. 

마감일자가 다가오면서부터 매일 하던 산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 시작한 산책은 초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아파트 산책길을 미르와 함께 걸으며 나는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다.

간만의 산책이라 미르도 엄청나게 신이 나 있었다. 

그날의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녁이내가 자욱이 내려앉던 어스름한 사위,

흰 털을 휘날리며 내 앞에서 뛰어가던 미르의 뒷모습,

글 쓰느라 진이 다 빠져 빼짝 마른 몰골로 미르를 뒤따르던 나... 

많이 지쳐있었고 그래서 힘은 들었지만 마음만은 가볍던 그날의 산책은  

지금도 내게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미르가 중이염을 심하게 앓기도 했고 기관지협착증 증세까지 보여 병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할 일을 모두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책을 나섰던 그때만큼은 걱정을 내려놓았더랬다.

그랬다.

그때 우리는 행복했고, 여유로웠다. 

 

미르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에 MBC에서 방영했던 MBC스페셜 <노견만세>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출판사로부터 제안 받았다. 미르가 10개월가량 되었을 무렵인 2009년 10월 무렵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미르를 키우면서 나름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출판사의 원고 청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죽음을 앞둔 노견들과 그들을 사랑으로 키워온 인간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펫로스증후군을 앓는 견주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해진 단어가 되었지만 2009년 당시만 해도 '펫로스증후군'은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나 역시 <노견만세> 작업을 하면서 처음 그 단어를 접했더랬다.

 

그 책의 주인공 중 하나가 '찡이'라는 블랙시츄였는데 당시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다.

찡이 말고도 열다섯을 훌쩍 넘긴 노견들이 책에는 등장한다. 

한때는 미르처럼 똥꼬 발랄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노견들.

그렇게 노견이 되기까지 어떻게 케어했고 어떤 위기를 거쳤는지 반려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배우고 싶었다.

언젠가는 나도 겪게 될 미르와의 이별을 마음으로나마 미리 준비해두고 싶기도 했다. 

 

나름대로는 진정성을 갖고 접근한 작업이었지만

미리 해놓는 마음의 준비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미르의 죽음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막연하게 느끼는 이별과 현실로 겪는 이별은 그만큼 괴리가 크다.

처음 겪는 이별인 경우는 그 격차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긴 쉬운 이별이란 게 과연 있을까.

어떤 이별이든 상처는 남게 마련이다. 

윙크의 일만 해도 그랬다. 

 

윙크를 만난 건 가을 태풍이 들이닥쳤던 2009년 10월의 어느 밤이었다..

오후부터 심상치 않게 불어대던 바람은 밤이 되자 더 거세져서 창문과 나무를 요란하게 흔들어댔다. 

귀신 우는 소리를 닮은 바람소리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기 시작한 것은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아파트단지가 떠나가라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어미를 찾는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베란다로 나갔다.

쪼르르 따라온 미르가 불안한 시선으로 고개를 쭉 빼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와 어둠 짙은 베란다 밖을 번갈아봤다.

 

"미르도 들리지? 새끼 고양이가 엄마를 잃어버렸나 봐."

 

나는 미르를 안아 들고 다시 화단 쪽을 내려다봤다. 

경비 아저씨들이 아파트 화단 앞을 서성이며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치는 것이 보였다.

그분들도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경비 아저씨들이 플래시를 끄고 경비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어? 왜 그냥 가지?"

 

나는 의아해하며 베란다 아래를 얼마간 더 주시했다. 

화단을 떠난 아저씨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경비실 문을 두드렸다. 

왜 그냥 돌아오셨는지 여쭈자, 

 

"플래시 불빛에 놀랐는지 화단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아요."

 

잡으면 구청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통 잡히질 않으니 일단 놔뒀다가 나오면 잡아야겠다고 덧붙이셨다.

미르를 키우게 되면서 내게는 여러 변화가 생겼는데 유기동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중 하나였다.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구청에 신고가 들어가 포획된 유기묘나 유기견들은 일정기간 동안 유기동물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고

그 기간 동안 찾으러 오는 주인이 없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점이었다.

아파트 화단에서 울고 있는 새끼고양이도 안락사에 처해질 수도 있는 거였다.

게다가 기상예보에서는 곧 많은 비가 쏟아질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안고 아깽이의 소리가 들렸던 화단으로 이동했다.

낯선 인기척을 느껴서인지 좀 전까지 울던 아깽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가뜩이나 어두운 화단이 먹물을 칠해놓은 것처럼 시커맸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아깽이의 위치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야옹... 야옹... 야옹아... 어디 있니...."

 

화단 근처를 서성이며 불러봤지만 돌아온 건 침묵.

하는 수 없이 화단을 떠나 집으로 올라왔다. 

문을 열자 현관에 나와 있던 미르가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난리도 아니었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이 밤에 나 혼자 두고 왜 나갔다 왔어요?'

 

나는 미르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며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잠시 울음을 그쳤던 아깽이가 다시금 줄기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바람은 그새 더 강해져서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휘어졌고, 떨어진 이파리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것 같았다. 

 

"미르야, 저 애기 어떡하지?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데려와야 하나 이런 생각이 50프로,

나보다 먼저 누군가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50프로였다. 

엄마를 잃고 우는 아깽이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미르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덜컥 구조했다가 미르가 길냥이에게 공격적으로 나오면 큰일이 아닌가.

하물며 나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더 정확히는 고양이의 눈빛이 그랬다.

심지어 아기 고양이였다.

그 아이를 데려다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든 빨리 나와서 저 아이를 구해주세요. 나는 자신이 없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베란다 밖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내 바람과 달리 1시간이 넘도록 행동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시각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들 잠을 자고 있는 걸까?

이렇게 시끄러운데 잠이 오나?

이제 어쩌지? 정말 내가 데려와야 하나?

 

놀라고 의아해하고 걱정하며 베란다와 방안을 오갈 때마다 미르가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무어라 무어라 찡찡거렸다.

그 소리가 마치 그만 오락가락하고 빨리 다녀오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르야, 애기 데려오면 잘해줄 거야?"

 

나는 미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짖기도 하고 부산스럽게 굴던 미르가 내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가만히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교감이라는 것이 생긴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반려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대략적으로 읽을 수 있다.

미르가 길냥이 새끼를 데려오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알았어. 갔다 올게."

 

대신 결심한 것이 있었다. 

구조해서 잠시 보호하고 있다가 좋은 주인을 찾아 입양을 보낸다, 였다. 

나는 미르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고양이까지 키울 자신이 없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미르에게도 얘기했던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미르에게는 차후의 일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채 내 머릿속으로만 결정을 내린 뒤

아파트 화단을 향해 집을 나섰다. 

 

 

 

구조한 첫날밤의 윙크. 삼색묘였다.

 

 

 

내가 처음 불렀을 때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있던 아깽이가 두 번째 내려가서 

 

"야옹... 야옹아...."

 

하고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 화단의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렇게 빨리 나올 줄 몰라 당황한 내가 주춤 서 있는 사이, 작디작은 그 아이가 내게로 뛰듯이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당황한 채 얼른 그 아이를 안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이 아이를 미르가 어떻게 맞아들일지 궁금해하며.... 

 

미르는 항상 윙크의 곁을 지켰다.

 

 

 

미르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아깽이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호기심을 보이며 깡총 뛰어올라와 아깽이 곁을 떠나지 않았고

추워서 벌벌 떠는 아깽이의 체온을 올려주려고 담요로 싸서 내가 안아주고 있자 자기도 보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아깽이는 삼색묘였고, 자주 한쪽 눈을 깜빡거렸다.

구조한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에 데려가 여러 검사를 하고 눈검사도 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귓속이 깨끗한 것 하며 피부병도 없고 여러모로 살펴봤을 때 누군가 키우다가 버린 것 같다는 말씀도 있었다.

그리고 사내아이라고도 알려주셨다.

일단 건강하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도 마치 윙크를 하듯이 나를 보며 아깽이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서 이름을 '윙크'라고 지어주었다.

좋은 가족을 만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사랑 받는 아이로 자라기를 빌며...

 

다시 구조 당일 밤으로 돌아와 계속 적어보자면,

어느 정도 윙크의 떨림이 멈추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먹여야 할지 몰라 인터넷 고양이카페에 접속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지식을 공유받는 사이 미르는 윙크의 털을 핥아주고 있었다. 

그 뒤로도 미르의 놀라운 행동들은 이어졌다.

 

 

 

미르의 관심은 온통 윙크에게 쏠려있었다.

 

 

 

자기가 낳은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똥꼬를 핥아주었고, 

윙크를 보호할 책임이 자기한테 있다는 듯 호위무사처럼 윙크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녔다.  

당시 미르는 한창 클 때라서 식욕도 좋았는데 윙크가 먹을 고양이 사료를 탐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윙크가 밥을 먹으면 곁에 착 누워서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잘한다! 잘한다! 내 새끼 잘한다!

 

이런 분위기를 풍기면서....

 

윙크의 식사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시진 찍는 나를 질책하듯 쳐다보던 미르.

 

 

 

미르에게 윙크는 정확히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느낀 대로 자식으로 여겼던 걸까, 아니면 동생으로 생각했던 걸까.

서로 종이 다르니 동족으로는 느끼지 않았을 것 같긴 한데 사람의 말로 미르가 말해준 적이 없으니 확실치는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미르가 윙크와 헤어지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윙크에게 가족이 생긴 건 임시보호를 한 지 보름 정도 지나서였다.

맨 먼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키울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여건상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지인들도 정중히 거절을 해왔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 고양이카페에 입양글을 올렸고, 물망에 오른 분 중에 한 분에게 윙크를 보내게 되었다.

윙크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미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내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에 돌입해야 했고,

미르는 기관지협착증세가 점점 심해져 거위울음소리를 내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둘째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윙크와 그간 정이 들었지만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미르는 윙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윙크가 떠나던 날의 미르 모습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윙크를 보낼 때 쓰려고 미리 구입해 둔 이동가방에 그 아이를 넣으려고 하자 미르가 온몸으로 이동장의 입구를 막았다.

어찌어찌 윙크를 안으로 들여 넣은 뒤 지퍼를 잠그려 하자 이번에는 앞발로 못하게 막았다.

윙크의 입양자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르를 간신히 떼어놓고 이동장의 지퍼를 잠근 뒤 그 가방을 들고 일어서자 미르가 울기 시작했다.

현관으로 가는 나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미르가 이 정도로 격하게 싫어할 줄은 예상을 못한 터라 난감하고 당황스럽고 속이 상했다.

현관문까지 가서도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하고 고민했다.

 

'이렇게 미르가 보내기 싫어하는데 데려가지 말아야 하나...'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 그때 윙크의 입양자로부터 약속장소와 시간을 확인하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면 윙크를 보내지 않았을까....

 

 

윙크의 입양자가 보내준 사진. '테리'라는 새 이름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윙크의 가족이 될 분은 젊은 여자였고 직장에 다녔으며 십몇 년을 키운 고양이와 이별한 경험이 있었다.

고양이를 키워봤으니 그렇지 않은 나보다는 좋은 가족이 되어줄 거라고 여겨졌다.

그분이 자기는 약속장소로 가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미르를 간신히 떼어놓고 문을 나서는데 내가 정말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임보라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르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르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정했던 미르와 윙크의 모습도, 미르의 꽉 차 보이던 시간도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미르 하나도 버거워하던 내가 둘째 입양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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