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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09. 가장 큰 위로

 

미르가 떠나고 나서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슬픈 것이 있다면 

이제는 미르를 안을 수 없다는 것,

만질 수 없다는 것,

더는 그 아이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내 이마를 다시는 미르의 엉덩이에 댈 수 없다는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그립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미르의 엉덩이를 통해 받았던 위로다. 

 

생전에 미르는 침대도 좋아했고 베개도 좋아했었다.

내 베개 옆에 놓아둔 여분의 베개는 항상 미르 차지였다.

미르는 그 베개에 마치 사람인양 옆얼굴을 대고 누워 잠에 빠지곤 했다. 

주둥이로 이불을 들추고 그 안에 쏙 들어가 누운 뒤 베개를 베고 눕기도 했다. 

 

 

미르는 사람처럼 이불을 덮고 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침대에 누워면 얼른 자기 베개로 올라가 

엉덩이를 내 쪽으로 향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민하느라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누군가로 인해 상처를 받아 크게 마음이 힘들 때,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옆을 보면 거기 항상 미르의 엉덩이가 있었다.

 

몇 살 때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베개 위에서 자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미르는 나와 마주 보는 자세로 잔 적이 없다. 

품에 안고 자고 싶어서 미르를 끌어당겨 두 팔 안에 가두면 기를 쓰고 빠져나갔다.

그리고 늘 내게 엉덩이를 보인 그 자세로, 어떤 말도 없이, 어떤 보챔도 없이,

아주 조용히 내 옆에서 잠들고는 했다.

 

잠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내가 몸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거나 책을 보거나 할 때면

엄마 껌딱지 미르도 침대 옆에 놓아둔 스텝을 폴짝폴짝 건너뛰어 올라와 내 옆에 누웠는데

얼굴을 나에게 향한 자세로 눕기보다는 뒤통수를 내게 보인 채 누웠고

그래서 눈길을 미르 쪽으로 향하면 항상 뒤통수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는 했다. 

 

 

2019년 3월 24일. 10살의 미르.

 

 

 

내게 등을 돌린 자세로 누워 잠든 미르가 가끔은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희한하게 미르의 그 무심함이, 그 침묵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특히, 엉덩이를 내 쪽으로 두고 베개를 가로질러 누워있는 미르에게서 받는 위로가 컸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미르의 작은 엉덩이에 가만히 대고 있으면 

들끓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내가 자기 엉덩이에 이마를 계속 대고 있으니 귀찮을 법도 하건만

미르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다 진정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모든 걸 다 알지만 모른 척하는 듯한 태도로....

 

그 침묵이, 기다림이 굉장히 큰 위로로 다가오곤 했다. 

이런 위로를 나는 살면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말로, 물질로, 나를 위로했던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미르가 내게 주는 위로는 사람이 주는 위로보다 몇 백배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미르의 엉덩이를 찾게 된 이유였다. 

 

이마를 통해 미르의 체온과 작은 엉덩이 골격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으면 

요동쳤던 감정이 차분히 진정되면서 솔솔 잠이 왔다. 

 

미르가 떠나고 난 뒤 잠이 깨면 맨 먼저 보이던 미르의 뒤통수가 보이지 않는다.

베개를 차지하고 편하게 누워 잠자던 미르도 더는 볼 수 없다. 

 

나는 매일 비어있는 미르의 베개를 보며 자리에 눕는다.

처음 얼마간은 미르가 마지막까지 입었던 옷을 미르 베개에 놓아두었다.

미르가 거기 누워있는 것처럼....

그 옷을 쓰다듬으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살아있을 때 더 잘해줄 걸....

 

반려견을 떠나보낸 이들이 매일 하는 후회를 나도 9개월 넘게 하고 있다. 

유해진 배우님이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반려견 가을이와 이별하고 힘든 마음이 좀 괜찮아질 때까지 3년은 걸린 것 같다고.

그러니 나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남겨진 자의 슬픔은 오로지 남겨진 자의 몫이다.

미르가 없는 집 안이 주는 적막감이 견디기 어려워 자꾸 집 밖으로 나가게 되고,

들어주는 미르가 없건만 혼자 중얼중얼 미르에게 말을 건네고는 한다.

미르가 여전히 내 곁에 있는 것처럼....

그렇다. 

나는 미르를 떠나보냈지만 아직 온전히 떠나 보재질 못하고 있다.

내게 힘든 일이 생길 때면 특히나 더 그렇다. 

미르의 엉덩이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 금방 마음이 가라앉을 텐데....

이런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이다. 

미르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펫로스로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강아지 한 마리 새로 데려와서 키워."

 

그들이 왜 이런 권유를 하는지 나는 모르지 않았다.

떠난 반려견을 안거나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살을 맞댐으로써 얻었던 위로들을 

새로 입양한 반려견을 통해 충족하라는 뜻.

실제로 펫로스를 앓는 많은 반려인들이 또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함으로 펫로스를 극복하고 있다. 

내 동생, 그러니까 힘찬이 엄마도 그 경우에 해당했다.

 

정말 순하고 착했던 힘찬이.....

 

 

 

내가 사랑했던 또 한 마리의 강아지...

미르보다 한 달 빠른 형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힘찬이.

까칠한 미르를 싫어하지 않고 언제나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던 힘찬이는 미르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힘찬이와 이별한 뒤 여동생도 참 많이 힘들어했었다.

제부가 총각 때부터 키웠던 '효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첫째 고양이와 

힘찬이가 살아있을 적에 입양한 길냥이 출신 '다솜이'라는 이름의 둘째가 있었지만

여동생도 펫로스증후군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힘찬이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과 우울로 힘들어하던 여동생이 어느 날 셋째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였다.

'보라'라는 이름을 갖게 된 셋째 고양이는 둘째 다솜이가 그랬듯이

여동생이 살던 아파트단지를 떠돌던 아깽이 길냥이였다.

그 아깽이 길냥이를 구조해 보살피면서 여동생은 조금씩 슬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아깽이를 들이기 전에는 하루 온종일 힘찬이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관심을 주어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깽이를 돌보다 보니 확실히 힘찬이 생각을 덜 하게 된다고 여동생은 말했다. 

지인들이 내게 새 아이를 입양해 보라고 권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개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은 물론이고 아플 때 지출해야 할 병원비가 결코 만만치 않다. 

미르가 살아있을 적에 내가 농담처럼 자주 한 얘기가 있다. 

 

"미르 병원비로 외제차 한 대 값이 나갔어."

 

사실이다. 매년 병치레를 하는 미르 덕분에(?) 정말로 큰돈이 지출되었다.

아픈 아이를 둔 분들은 알 것이다.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하면 뭉텅이 돈이 쑥쑥 빠져나간다.

심하게 앓거나 지병이 있어 지속적으로 치료를 해줘야 하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미르도 그랬다. 그 결과로 내 재정상태는 해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미르가 떠난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태로 누군가를 데려온다는 건 누군지 모를 그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르와 반려를 정식으로 시작했던 그 해, 2009년의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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