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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07. 소파 추락 사고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인간은 쉽사리 포기를 못하고 집착하여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는 한다.

나 역시 일적으로든 인간관계에서든 쉽게 포기를 못해 힘든 일들을 겪고는 했다.

동물은 인간에 비해 생각이 단순하고 영혼이 순수하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인간처럼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고

쿨하게 인정할 것 인정하고 포기할 건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 

미르를 키우면서 종종 드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악몽 같던 첫날밤은 어찌어찌 지나가고 이튿날이 밝았다.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미르는 이날부터 울지 않았다.

동물이 인간보다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방안 풍경이 밝은 빛에 드러나자

미르는 흑구슬처럼 까만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며 집안 곳곳을 두 눈에 담았다. 

 

'흐음... 이제부터 여기서 지내야 한단 말이지...'

 

어젯밤의 울부짖던 미르는 더 이상 없었다.

울어봤자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그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다녔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굴던 미르가 이렇게 빨리 모견 찾기를 포기하자 

나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미르의 모견이 이 사실을 알면 서운하겠다,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인 미르 덕분에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새끼 미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는 것.

문제는 아무 곳에나 쉬야를 하고 응가를 한다는 점이었다. 

하긴 배변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배변훈련을 시켜주는 게 맞다,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쬐끄만 몸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춰서 미동이 없으면 어김없었다. 

글을 쓰다가 잠깐 일어나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을 가려고 이동하다가

거기 소변이 있는 줄 모르고  발로 밟아서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자연히 나는 미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글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책상의자에 앉아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나의 온 신경은 미르에게로 쏠려있었다.

사람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절감했다.

'직감'이라는 이름이 붙은 눈, 그 눈이 내 뒤통수에서 레이더처럼 쉬지 않고 돌아갔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있었고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미르가 움직이는 낌새가 있다 싶으면 뒤통수의 레이더가 경고음을 울렸다. 

 

삑! 삑! 비상! 비상! 금방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후다닥 미르에게 달려가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배변판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르는 쉬를 싸기 일쑤였다. 

새끼 강아지에게 배변훈련을 시켜본 분들은 다들 경험했으리라.

손바닥을 적시던 뜨뜻한 액체의 느낌과 바닥에 뚝뚝 떨어지던 소변 방울의 모습을

 

"참아! 갈 때까지 참아, 미르야!"

 

나는 이렇게 소리치며 방안을 미친 듯이 오락가락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방광 조절이 아직 힘든 새끼 강아지에게 내 요구가 너무 무리한 것이었음을. 

 

그래서 한 선택이 배변패드 장판이었다.

미르의 행동반경 안의 방바닥 여기저기에 배변패드를 장판처럼 여러 장 깔아놓고

미르가 그곳에 쉬를 하면 오버스럽게 칭찬해 주기 시작했다.

 

미르는 아주 눈치가 빨랐고 똑똑했다.

패드에 쉬를 하면 칭찬과 보상이 있다는 것을 배변 훈련을 시작한 지 반나절 만에 알아차렸다.

방바닥에 깔아놓았던 패드를 한 장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변판으로 데려가 쉬를 하도록 유도했다. 

배변훈련을 정식으로 시작한지 삼일 만에 미르는 쉬야를 완벽하게 가리게 되었다. 

응가 훈련은 좀 더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미르의 배변실수로 인해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일찍 해결된 셈이었다.

이건 내 직업 덕분이기 하다.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24시간 일을 하다 보니 미르와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있었고,

그렇게 24시간 붙어있으며 그때그때 바로바로 배변 훈련을 시켜주니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미르는 굉장히 귀여운 행동을 자주 하기도 했다.

특히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때가 있었는데 언제냐면

내가 무슨 말을 건넬 때나 어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 작은 머리를 갸웃갸웃 거리는 행동이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는 지켜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사람은 머리빨, 강아지는 털빨이라고 했다.

백신접종을 마치고 덥수룩했던 배냇털을 미용해주자 미르의 얼굴 윤곽이 드러나면서

귀여운 면모가 확실히 더 부각되었다. 

 

정전기로 귀털이 부스스 일어나있는 모습.

 

 

게다가 미르는 스킨십을 굉장히 좋아했다. 

언제 어디서든 나와 살을 맞대고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굉장한 뽀뽀쟁이였다. 

미르는 마치 내가 자신의 온 우주라도 되는 양 항상 나와 모든 것을 함께 하려고 했고,

아낌없이 자신의 체온을 나에게 나눠주었으며,

적극적으로 내게 애정표현을 해주었다. 

이토록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만사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

 

미르와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하는 일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르는 한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내가 가는 곳마다 졸졸졸 쫓아다녔다.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자신만을 사랑해 주기를 원했다.

 

내가 작업하는 동안에도 책상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 발냄새로 위안을 삼고는 했다.

 

 

 

그러나 사람은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

작가인 나는 글을 써야 생활이 해결된다.

그동안 미르와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글을 많이 못 써놓은 터라 

더 이상은 미르의 요구에 응해줄 수 없는 때가 드디어 왔다. 

일을 하기 위해 미르의 보챔을 무시하기 시작하자 

미르는 항변하듯이 의사표현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왜 나를 안 보느냐, 왜 나랑 안 놀아주느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눈을 뜨면서부터 눈을 감고 잠을 잘 때까지 하루 종일 보챘다.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나는 미르에게 지쳐갔다.

 

이렇게 더는 못 살겠다.

 

더는 키울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다. 

미르가 소파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파는 내 작업책상 뒤쪽에 놓여있었다.

내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작업을 하고 있으면 미르는 소파로 올라와 

소파 끝에 붙어 서서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끙끙끙끙 앓는 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 좀 봐달라고, 나 여기 있다고...

 

"미르야, 엄마 일해야 돼."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퉁!

 

쿵, 도 아니고 쾅, 도 아니고 퉁! 소리가 둔탁하게 등 뒤에서 울렸다.

미르의 체중이 가벼워서 그런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싸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뒤돌아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파 바로 앞쪽 바닥에 미르가 떨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떨어지면서 미르도 놀랐을 테고, 평소 성격대로라면 

나 아프다고 엄청 큰 소리로 깽깽거렸을 텐데

미르는 어떤 소리도 없이, 팔다리의 미동도 없이 꼼짝하지 않았다. 

깜짝 놀란 나는 번개처럼 달려가 미르를 안아 들었다. 

작은 미르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미르야!!"

 

나는 비명처럼 외치며 미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미르의 심장을 마사지하고 전신을 주물러댔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내가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생명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르야... 잘못했어. 엄마가 잘못했어..."

 

미르의 굳은 몸을 풀어주면서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러길 얼마였을까. 

시간상으로는 3분에서 5분 정도였지만 

느낌상으로는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깽!

 

나무토막처럼 굳어있던 미르가 단말마 소리와 함께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서럽게 울어대는 미르를 안고 나도 같이 울었다. 

그 와중에도 미르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를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작은 혀로 핥아주었다. 

미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많이 놀랐어요? 나는 괜찮아요, 엄마... '

 

정말로 미르는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방안을 종종거리며 뛰어다녔고, 인형을 물고 와 놀아달라고 보챘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소파에서 떨어지면서 뇌를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미르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서 이러이러한 사고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동가방에 미르를 넣고 집을 나섰다.

 

진료 결과는 정상.

떨어지면서 근육이 놀라 일시적으로 사지경직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날 내가 받은 충격은 좀처럼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지 절실히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런 내가 좋다고 여전히 애정표현을 하는 미르를 보면서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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