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하얀 강아지가 헛것으로 보였던 그날,
나는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굳히기까지가 문제일 뿐, 막상 마음을 정하고 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망설이느라 허비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나는 바로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인분께 전화하는 것이었다.
"저, 강아지 데려오기로 했어요. 언제 가능한지 친구분한테 연락해서 알아봐 주실래요?"
지인분의 친구분이 강아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입양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내게 지인분이 그 얘기를 해주면서
'내가 알아봐 줄까?' 제안을 했더랬다.
그때만 해도 나는 강아지농장이 어떤 곳인지 그곳의 실태에 대해
아무것도, 정말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지인분이 자기 친구는 개를 많이 키우고 있고 그 개들이 낳은 새끼를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개를 굉장히 좋아하는가 보다, 이렇게만 받아들이고 끝이었다.
지인분의 친구분이 한다는 사업이 번식업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고,
그분이 운영한다는 그곳이 강아지 농장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강아지농장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다.
강아지농장이라고 불리는 그곳들이 실은 번식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미르가 내게 온 뒤였다.
그랬다. 나는 참 많이도 무지했고, 내 관심사가 아닌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아왔었다.
그때 나의 관심사는 온통 내가 데려와야 할 '새끼 강아지'에만 꽂혀있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환시로 보았던 '희고 작은 강아지 새끼'였다.
그 새끼의 어미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지,
번식장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정보도 전무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나는 지인분께 강아지를 데리러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뚜벅이였다.
지인분의 차를 얻어 타고 편하게 다녀오고 싶을 뿐이었다.
"오케이, 언제 갈까?"
지인분이 날짜를 물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으므로,
"12월 24일이면 좋겠어요."
뭐든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나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인연을 맺으면 의미가 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지인분이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그전날인 12월 23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그제야 내가 정말로 강아지를 키우게 되는구나, 실감이 되면서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이건 정말 못된 생각인데, 그때는 못된 생각이라는 생각조차 안 했지만,
두근두근하는 마음 한쪽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단 키워보고 더 못 키우겠으면 돌려보내지 뭐.'
이런 생각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인지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또 하나 가볍게 넘긴 것이 있었다.
"강아지 데려오려면 15년은 책임질 각오를 하고 데려와야 해. 그럴 자신 없으면 데려오지 마."
동생은 몇 번이나 이런 말로 내게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나는 '15년'의 무게와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키우다가 정 못 키우겠으면 돌려보내지 뭐'
이런 마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경솔한 내가 딴에는 열심히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털은 꼭 하얀 털이여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정했다.
흰색은 길한 색이다.
꿈에서도 흰색 동물을 보면 길몽으로 여긴다.
이름도 미리 지어놨다.
미르.
미르는 '용'의 순우리말이다.
용은 예부터 길한 영물로 여겨져 오던 상상 속의 동물이다.
이왕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심한 거, 길한 색의 강아지를 데려와 상서로운 기운을 나눠 받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성별은 수컷으로 정했다.
암컷은 임신과 출산을 염두에 두어야하는데 거기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미개가 새끼와 이별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본 경험이 있다.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어느 날 마루 밑에 올망졸망 새끼를 낳아놓았고,
눈도 못 뜨고 낑낑대던 그 강아지들은 어미젖을 떼자마자 동네분들 집으로 하나둘 보내졌었다.
새끼들과 강제로 이별을 당한 어미개는 안절부절 어쩌지 못하며 끙끙 울었더랬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곧 내 아이가 될 새끼 강아지를 강제로 품에서 떼어놔야 했을
어미개의 슬픔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이렇게나 잔인하다.
어쨌든, 나는 새끼를 낳게 해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굳이 암컷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나보다 먼저 힘찬이를 입양한 동생은 나와 달리 이것저것 먼저 공부를 많이 한 뒤에
힘찬이를 입양한 것 같았다.
때가 되면 중성화수술을 시켜야 강아지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중성화수술 비용이 수컷보다 암컷이 비싸다며 수컷을 권했다.
암컷이든 수컷이든 별 상관 없던 나는 동생의 그 말에 수컷을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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