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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01. 헛것이 보이다

누군가 그랬다.

인연은 신이 이미 정해놓았고, 인간은 그저 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그래서 만날 사람은 어떡해서든 만나게 되어있고,  

반대로, 인연이 아닌 사람은 인간이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만날 수 없다고.

설혹 억지로 연을 맺게 되어도 신이 정해놓은 인연이 아닌 관계는 결국 헤어지게 되어있다는 거다. 

인연에 관한 이 속설은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어서

동물과 사람도 인연이 있어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미르와 나의 만남도 신이 개입되어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미르를 입양하기도 전에 내가 미르 모습을 환시처럼 내 집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려볼 때

내 나름으로는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뭔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20살 때 독립한 뒤로 나는 줄곧 혼자 살았고,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이를테면 동거인을 두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외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 어떤 존재, 사람보다는 덜 힘들고 내 외로움을 충족시켜줄 누군가를

집에 데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해왔었지만

청거북과 토끼를 반려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솔직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이라는 게 몸피의 작고 큼을 떠나 손이 많이 가고 

계속 신경을 써줘야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다시 시도를 못하고 참았다.

나처럼 귀찮은 게 많은 사람은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게 반려동물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강아지는 산책을 시켜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한다니 

생각도 하지 말자, 이런 마음으로 지내왔었다.

하물며 나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개공포증이 있었다. 

여동생이 어느 집에서 버린 요크셔테리어 강아지를 데려와 잠깐 맡아준 적이 있었는데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내가 가까이 가자 왕! 하고 짖으며 풀쩍 내게로 뛰어오르더니

내 콧등을 콱 물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개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랬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심하게 된 건 여동생 때문이었다.

 

 

까만 털이 귀엽던 힘찬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던 여동생이 어느 날 난데없이 강아지를 입양한 거였다. 

더 정확히는 요크셔테리어 새끼였다. 여동생은 이 아이에게 '힘찬이'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수시로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자랑했다.

 

 

50일도 안 된 정말 작은 새끼였다.

 

 

 

 

이렇게 앙증맞고 귀여운 생명체라니!!

힘찬이의 등장은 외로웠던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나도 키우고 싶다... 

나도 키우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데.... 이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청거북은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서 눈병이 나서 죽었다.

토끼가 그렇게나 똥을 많이 싸고 냄새가 많이 나며 시끄러운 동물이고

그렇게나 빨리 쑥쑥 자라는 줄 몰랐었고 이런 토끼의 면들이 부담스럽고

감담이 되지 않아 콩나물 공장을 하는 외삼촌 댁으로 보내버렸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뭔가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단정을 지어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그 즈음 나는 3권짜리 장편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었다.

작업에만 신경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몇 달에 걸친 작업으로 인해 내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나날이 커가는 열망 탓이었을까.

 

어느 날 집안을 오가며 막힌 소설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식탁 너머 통로에서 작고 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앞서도 적었듯이 나는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 외에 생명체랄 것이 내 집에 있을 턱이 없었다.

저게 뭐지?

나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허연 그것을 유심히 봤다.

 

 

강아지였다.

아주 작고 하얀 강아지가 식탁 너머의 주방 쪽 공간을 그 짧고 귀여운 네 발로

종종종종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치 방금 도착한 이곳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고 신이 난다는 듯 호기심어린 몸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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