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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미르이야기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한때 나는 미르의 외모 치장에 열을 올렸다.

귀털을 여자아이처럼 묶거나 땋아주기도 했고, 다리털도 풍성하게 길러 매일 빗어주었다.

미르의 옷도, 비누도, 간식도, 핸드메이드로 직접 만들어 파는 것들 위주로 구입했다.

미르가 크게 앓고 난 뒤부터였다.

죽다 살아난 미르에게 뭐든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그때.

나의 열정 때문에 미르는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어야 했고 매일 빗질을 견디느라 고생했다.

 

 

 

인형들보다 예뻤던 미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생일 때문에 또 미르는 시달려야 했다. 

미르의 생일은 12월 23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생일로 삼기로 했다. 

이날만 되면 제과점에 가서 케이크를 사 와 축하를 해줬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케이크 장식도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산타, 루돌프, 눈사람, 트리....

 

 

4살 생일. 급기야 고깔모자까지 쓰게 했다.

 

 

 

내 나름으로는 사랑의 표현이었지만 미르 입장에서는 꽤나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줘요!'

 

옷 입는 걸 싫어하던 미르가 떠오른다. 

그런데도 나는 줄기차게 옷을 입혔더랬다.

 

"잘 꾸미고 다녀야 사람들이 만만하게 안 봐."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미르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던 중에 깨달은 점이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개의 행색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험한 말을 하거나 무시하거나 발길질을 하려는 사람도 봤다.

한눈에 봐도 견주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음이 느껴지는 개들에게는 사람들의 푸대접이 확실히 덜했다.

그런 장면을 목도하고 나서 미르의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극성으로 보일 법했고,

실제로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미르를 위한 최선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늦가을에 산책할 때면 다리털에 붙은 낙엽을 떼어주는 게 일상이었다

 

 

 

나의 이런 행동들이 다 부질 없는 일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미르가 노견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관리받는 개처럼 보이는 것보다 미르가 편한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구입했던 생일 케이크도

13살 무렵부터는 준비하지 않았다.

내가 생일 축하를 해줘서 미르가 매년 이렇게 아픈 건 아닐까 싶었고

다 인간 좋자고,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이벤트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제는 미르가 떠나고 처음으로 나 혼자 보내는 미르의 생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까지 뒤척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외장하드에 저장되어있는 미르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꺼내 보았다.

사진들 속 미르는 인형처럼 예뻤다.

내가 원했던 대로 '관리 받는 개'의 느낌도 물씬 풍겼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 느낌에 맞게 하네스를 바꿔 입혔다

 

 

 

미르를 치장해주면서 나는 행복했었다.

내 기쁨을 위해 미르가 참 많이 참아주었다는 걸 사진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고마운 미르. 

나와 함께 해주느라 고생했어.

네가 있는 그곳에서는 어떤 고생도 하지 않길, 

억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길,

네가 원하는 것만 하면서 자유롭게, 기쁘게 살고 있기를 매일같이 빌고 있어.

하느님은 동물들에게도 천국을 허락하는 분이시니

하늘나라 천사들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어.

 

너 없이 보내는 첫 생일이라 우울했지만

너 없이 보내는 생일은 내년에도 또 올 거니까 짧게 슬퍼하고

너와의 추억을 기쁘게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낼 게.

 

메리 크리스마스! 

 

행복한 시간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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