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이런 거였다.
아깽이 윙크에게 그러했듯 미르가 강아지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예뻐한다.
아기 미르와 아기 힘찬이가 '나 잡아봐라~' 놀이하며 신나게 뛰어다녔던 것처럼
미르와 별이도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신나게 생활한다.
그런 둘을 나는 흐뭇하게 지켜보고, 또 얼마간은 둘에게 소외된 내 처지를 서운해하며 글에 집중한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로망을 키워나가며 미르 동생의 작명에 돌입했다.
둘을 합쳐 부르기도 좋고 어감도 예쁜 이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이름이 '별'이었다.
둘째를 들이기로 결심한 뒤 강아지카페에 들어가 이 글 저 글 살펴보았더랬다.
첫째가 남자아이면 둘째는 여자아이가 좋다는 글이 있었다.
선배 반려인들의 조언을 따라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름도 여자아이스럽게 '별이'로 정했다.
별이.
미르와 합쳐 부르면 미르별이 된다.
미르별.
어린 왕자의 작은 별이 연상되었다.
나는 미르와 별이가 이름처럼 예쁘게 지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미르 동생 만들어주기 작전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2009년 11월 30일에 우리에게 온 별이는 가정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번식장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경매를 거쳐 애견샵으로 팔린다는 걸 미르를 통해 알았기에
둘째는 가급적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다.
유기견 보호센터를 통해 입양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솔직히 그때는 자신이 없었다.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내 그릇 크기가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보듬어줄 정도로 크지 못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인터넷 강아지카페를 통해 가정견을 알아보던 중 별이가 눈에 들어왔다.
10월에 태어난 별이는 건강했고, 새끼 강아지들이 그러하듯 앙증맞고 귀여웠다.
그 아이가 태어난 집에 직접 방문해서 첫 눈도장을 찍었고,
1차 접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해서 한 달 만에 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다.
다행히 별이는 미르 오빠를 좋아했다.
미르가 내게 온 첫날밤 보였던 반응과 정반대 행동을 하기도 했다.
같은 종족인 미르가 있어서였을까?
별이는 울지도 않았고 모견을 찾지도 않았다.
미르도 아기 별이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아깽이 윙크에게 그랬듯 별이의 냄새를 맡았고 졸졸 쫓아다니며 관심을 보였다.
그 관심이 딱 3일 만에 끝났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4일째 되던 날부터 미르가 별이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별이는 미르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하려고 했다.
미르가 제일 좋아하는 방석에 올라가려고 하면 쪼르르 먼저 뛰어가 잽싸게 자리를 잡고 눕거나
별이 밥그릇을 따로 마련해 두었건만 미르 밥그릇에 욕심을 냈다.
별이에게 자기 물건을 순순히 양보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미르는 원망스러운 눈길을 돌려 나를 봤다.
'일단 참기는 하겠는데요, 스트레스받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미르가 눈빛으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별이는 미르 꼬추를 엄마 젖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자주 미르의 뒷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때마다 미르는 왼쪽 다리를 번쩍 들어 별이에게 고추를 허락했지만
별이가 아프게 깨물어 매번 화들짝 놀라며 별이를 밀쳐냈다.
둘의 행동을 그냥 두고 봐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서 가입해 있던 강아지카페에 접속해
질문글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때가 되면 저절로 없어질 행동이니 못하게 말리면서 지켜보라는 답변이 달렸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확실치는 않다.
나는 지금도 여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사랑을 나눠주는 법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미르와 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나의 혼란은 미르별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별이에게 곁을 내주던 미르가 4일째 되던 날부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 거리며 피하기 시작했다.
미르 오빠가 짜증을 내자 별이도 슬슬 피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매달렸다.
미르는 미르대로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
경쟁하듯 매달리는 둘을 지켜보며 나는 이 속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
하나가 매달려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둘이 매달리니 그야말로 울고 싶었다.
미르는 미르 나름대로, 별이는 별이 나름대로, 또 나는 나대로 힘든 시간들을 견디어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미르의 스트레스가 결국 폭발했고,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타난 이상행동은 사료 거부였다.
평소엔 없어서 못 먹던 사료를 한 알도 먹지 않았다.
물에 불려줘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 천연가루를 뿌려줘도,
미르가 죽고 못 사는 찐 고구마를 으깨어 함께 주어도 사료에 입조차 대지 않았다.
그리고 간식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먹겠지, 싶어서 사료를 거부할 때마다 밥그릇을 치웠다.
이틀이 지나고 4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미르는 밥을 먹지 않았다.
물배를 채우는 미르를 보면서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갔다.
또 다른 이상행동이 나타난 건 그 와중이었다.
앉아있을 때 한쪽 앞발을 들고 내려놓지를 않았다.
접질렸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걸어 다닐 때 보면 멀쩡하게 발을 디뎠다.
일종의 꾀병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르는 그렇게 온몸으로 나에게 항거하고 있었다.
'나는 동생이 필요 없어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르의 기침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서인지 기관지협착증 증세도 심해졌다.
기침의 횟수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했고 숨 쉬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러다가 애 잡겠다....
그동안 미르와 별이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기에 별이를 분양했던 분에게
그 점에 대해 공유하며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좀 더 지켜보자고,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던 그분 말씀에 나도 공감했었다.
그런 시간이 한 달 가까이 흘렀지만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질 않고
오히려 미르의 이상행동이 심해져 갔던 것이다.
별이는 별이대로 불행해 보였다.
혼자 웅크리고 잠들어있거나 아픈 미르 때문에 내가 쩔쩔매는 모습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런 별이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외동으로 갔으면 사랑을 듬뿍 받았을 텐데.....
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내가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긴 고민 끝에 별이의 원가족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지인 중 한 사람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나와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친한 동생이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그러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이 있었는데, 갓난쟁이 때부터 쭉 지켜봐 와서
얼마나 순하고 착한 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고 신뢰하는,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인 동생네 부부는 마침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어 했다.
혼자 크는 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서라도 강아지를 키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들로서는 처음으로 키우는 강아지였다.
그 말은 곧, 별이가 외동딸로 자라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지인 동생네로 별이가 입양된다면
별이가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내게도 좋았다.
나는 이 소식을 별이의 원가족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분이 몹시 불쾌해했다.
지인 동생네로 보내지 말고 별이를 그분께 보내라고도 했다.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파양 하게 되면 내가 알아서 새 가족을 찾아줘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인 동생네로 연락을 취한 것도 그래서였다.
파양을 원할 시 원가족에게 돌려보내달라는 이야기를 그분에게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대처가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때 그분들의 마음이 어떨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그분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러질 못했다.
나는 별이를 분양했던 분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행히 별이의 원가족분은 나의 사과를 받아주셨다.
나는 그분에게 지인 동생 부부를 소개했고,
별이의 아빠가 직접 그분께 전화를 걸어 안심을 시켜드렸다.
그 뒤로도 둘 사이에 몇 번의 통화가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별이 아빠가 그분께 얼마간 소식을 공유했던 걸로 알고 있다.
별이가 새 가족을 만나 우리 집을 나선 직후부터 미르는 앞발을 들지 않았다.
언제 그런 적이 있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면서 배를 드러내놓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쿨쿨 잠을 잤다.
잃었던 식욕도 돌아왔다.
기침도 빠르게 진정되어 갔다.
천만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미르야, 네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그러나 미르 탓만은 아니었다.
개는 견주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견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개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니 탓을 하려면 내 탓을 하는 게 맞다.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나는 개들에게 그다지 좋은 엄마는 아니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만만한 상대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내가 서열에서 밀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개들에게까지 엄격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야 하고
밖에 나가봤자 줄에 묶여 산책해야 하며
평생 맛없는 사료를 먹어야 하는 개들이 아니던가.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들은 동의하지 않는 양육법이겠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미르를 키운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불거지는 여러 부작용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분명 존재했지만
인간을 위해 자신들이 누려야 할 자유와 본능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개들에게 너그럽고 싶었다.
서열 따위 밀리면 좀 어떤가.
이런 생각도 은연 중 지니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면 된다고도 생각했다.
별이를 외동딸로 입양하게 된 지인 동생네에게도 그들 나름의 양육방식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별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갔다.
중성화수술을 하기 전에 출산을 해서 2세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오기도 했다.
그랬던 봄이가 13살이 되던 재작년 2022년 11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갑작스럽게 폐에 문제가 생겼는데 제대로 손을 써 볼 시간도 없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미르, 힘찬이, 별이.
원년멤버였던 셋 중에 제일 어렸던 별이가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셈이다.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꽤 여러 날이 걸렸다.
미르별 이야기는 내게 상처로 남아있고, 그래서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좋은 가정으로 별이를 보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라고 위안을 삼았지만
별이를 파양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별이를 분양했던 가족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죄송하다.
별이가 받았을 충격과 아픔은 또 어찌할 것인가.
미르의 혼란은 또 어떠한가...
둘을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도 참 힘들었다.
그때의 일을 기록하려고 당시의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외장하드에 남아있던 별이의 마지막 기록.
우리 집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의 날짜가 2009년 12월 22일이었다.
그다음 날인 12월 23일에 지인 동생부부가 와서 별이를 데려갔다.
오늘은 그날로부터 딱 15년째 되는 날.
우연치고는 참으로 절묘하게 15년이 지난 오늘, 2024년 12월 23일에
이 기록을 남기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더구나 12월 23일은 미르와 내가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하다.
우연이 겹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고작 한 달도 못 채운 인연이었지만 별이가 우리에게 잠시 왔던 것도
지인 동생네와 함께 살기 위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윙크를 구조한 것도 같은 이유는 아니었을지....
사람은 감히 짐작도 못하는 신의 계획.
그 계획이 작동하여 맺어지는 인연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브런치스토리에도 업로드합니다. 저작자의 사전허락 없는 무단도용이나 불펌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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